[42 글로벌프로그램] 다시 미국에 오다 - (3편/완결)

이번 편에서는 42 글로벌프로그램의 피날레, Seattle Tech Week와 프로그램을 통해 느낀 점들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혹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초반부가 궁금하시다면 이전 글들을 참고바랍니다.

기회를 발견하고 참여하기까지의 과정: [42 글로벌프로그램] 다시 미국에 오다 - (1편)

2년 만의 미국 생활과 프로그램 전반부: [42 글로벌프로그램] 다시 미국에 오다 - (2편)


플라이휠

그렇게 다섯 주가 지나고, 6주차엔 Seattle Tech Week가 기다리고 있었다.


Tech Week, 시애틀 창업 생태계

일주일 동안 총 여섯 개 세션에 참여했다(본 프로그램 운영을 전담하는 기관 WTIA에서 주최한 네트워킹까지 포함하면 7개!). 스타트업 대표들의 GTM 전략 공유부터 엘리베이터 피칭 연습, AI 스타트업의 성공 비결을 나누는 저녁 모임, 초기 스타트업 쇼케이스, SaaS 마케팅 강연, 그리고 시애틀 테크 생태계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다루는 패널까지.

전체 Tech Week에 대한 인상은 첫 세션에서 거의 결정됐다. 투자자나 시니어 포지션에 있는 분들이 연사로 나와 자기 경험을 공유하고, 청중과 토론하는 자리였다. 강연도 좋았지만 진짜 메인은 질의응답과 네트워킹이었다. 첫 세션이 GTM 전략이었던 만큼, 여러 스타트업 대표들이 거리낌 없이 자기 비즈니스를 소개하고 연사와 직접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링크드인의 나라,
끝나고 세션 도중 찍은 사진까지 받았다

여기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뭔가 보여줄 게 있을 때 다시 참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사실 우리 서비스(슬루스)는 B2C 중심이라 이 자리의 네트워킹에서 바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내가 어떤 상황이고, 무엇이 궁금한지를 구조화해서 말하는 게 준비돼 있지 않았다. 강연 자료라도 있으면 내용과 비교하며 생각할 시간이라도 있었을 텐데, 내용을 따라가면서 추가 질문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무엇이 궁금한지 세션 진행 중 실시간으로 소통과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며 생태계의 힘을 느꼈다.

엘레베이터 피칭 세션,
주제가 주제인지라 창업 초기이거나 이제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이후 한 주 내내 다듬은 보람이 있었는지, 두 번째 엘리베이터 피칭 세션 이후로는 영어로 슬루스가 어떤 서비스인지 짧게 소개하는 정도는 편하게 해낼 수 있었다. 1분, 혹은 그보다 짧은 순간에 상대방에게 우리 아이템이 어떤 아이템인지 각인시킬 한마디. 드라마 <스타트업>에서도 나왔던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개념이었지만, 미국에 있으면서 상당히 유용한 부분 중에 하나였다.
특히 그 다음 주 익스피디아 네트워킹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이후 이어진 행사들에서도 계속 명함 대신 링크드인을 교환하며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하고, 배경이 겹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의견을 나누거나 직접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는 걸 계속 봤다. IT 산업이 다른 어떤 산업보다 빠르게 성장한 이유가 바로 이런 환경 아닐까 싶었다. 시행착오를 서로 나누고 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특별히 더 뛰어나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 이런 구조 자체가 스스로 돌아가는 플라이휠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Show Box라고 무슨 옛날 공연장? 같은 곳에서 스타트업 데모가 이루어졌다


창발 피크닉, 우연히 찾아온 기회

같은 주 토요일에는 서북미 지역 IT 한인 커뮤니티 '창발(Changbal)'의 피크닉에 우연히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분의 한국인 멘토님께서 초대를 해주셨던 것.

화목하면서도 인사이트 있었던 시간이었다. 타지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해소해주고, IT 업계 트렌드나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LA에서는 워낙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있다보니... LA에 사는 한국인 친구도 IT쪽으로는 중국인과 교류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시애틀에는 이런 한인 커뮤니티가 있다는게 참 의미깊었다. Tech Week에서는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대화의 밀도를 끌어올리기 어려웠는데, 여기서는 꼭 비즈니스 파트너로서가 아니어도 AI 트렌드나 활용법, 커리어 고민 같은 걸 편하게 나누고 있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너무나 환대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뵙게 되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

그리고 운이 좋았다. 래플 1등 상품(공기청정기! 어라...)을 받았는데, 나에겐 딱히 필요 없는 상품이었다. (2주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공기청정기라니. 그것도 부피가 상당히 컸다..)

그래서 기쁨 반 근심 반으로 고민하다가 네트워킹하면서 알게 되신 분이 관심을 보이시길래(그 분은 2등 상품 - 솜사탕 기계를 받은 상황) 즉흥적으로 교환의 대가로 커피챗을 요청드렸더니 흔쾌히 성사되었고, 그랬더니 3등 상품 - 팝콘 기계를 받으신 분께서 오셔서 관심을 보이셔서 다시 커피챗 요청을 드렸고, 그렇게 공기청정기를 2번의 커피챗과 팝콘 기계로 맞바꾸게 되었다.

한 분은 UW를 졸업하시고 지금은 Amazon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셨다. 빅테크 기업마다 분위기와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미국 취업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Amazon의 Leadership Principle이 말만 그런게 아니라 실제 업무에서 적용되는 사례나 사무실의 풍경(다운타운의 Sphere는 보여주기 위한게 맞았던 걸로...), AI가 도입되면서 내부적으로 변화하는 사례(어떤 팀은 AI 활용에 관한 세미나를 한다거나 어떤 분은 각자도생이라고 했다고 😅 아무튼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게 맞는 것 같다)들을 들으니 멀게만 느껴졌던 빅테크들의 내부사정이나 고민, 빅테크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토요일에 처음 만나서 이렇게 바로 다음날 커피챗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실행력이 미국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높게 보는 부분이라고 칭찬해주셨는데, 많은 자극이 되었다. 앞으로도 작은 것들도 기회로 연결지을 수 있도록.

다른 한 분은 MIT CSAIL 출신 리서처셨다. 미국 대학원 준비 과정과 대학원 생활, 커리어를 설계해나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나눠주셨는데,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마찬가지로 어느 집단에 있건 존재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연구해보고 싶은지 말이다. 이게 선행되어야 컨텍이든 다음 스텝을 준비할 수 있을테니까. 내 경험을 반추해보아도 본인이 정말로 좋아하는 분야, 몰입해 있는 분야라면 교수님과 만나 얘기할 거리가 많았고, 그리고 그걸 거절할 교수님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면에서 창업, 대학원은 참 문제를 바라보는 접근법과 해결하는 방식은 좀 다르더라도 PS의 관점에서 서로 너무나도 닮아보였다.
나는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 나의 무엇으로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었다.

첫 커피챗 전, 질문을 되뇌며, UW 공원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준 익스피디아

그다음 주에는 익스피디아를 방문했다.

지금까지 다녀본 기업 방문 중 가장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우리를 위해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윷놀이 도구를 준비해줬고, 임직원분들과 점심 식사하며 따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세션도 준비해주셨다. Tech Week 내내 다듬었던 짧은 영어 소개가 여기서 제대로 쓸모를 발휘했다. 넓은 본사에, 심지어 원격 근무를 한다고 하는데, 직원분들의 애사심과 에너지가 특히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회사를 방문했다기보다 환대를 받았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마침 저 날이 익스피디아의 어닝콜이 있는 날이었는데, 결과는 어닝 서프라이즈였고 축하를 건네고 왔다.

상당히 넓었던 익스피디아 본사, 이런데 원격이라니...


프로그램의 피날레, Final Demo Day

8주의 끝에는 Demo Day가 있었다.

준비 과정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만들어둔 pitch deck이 있었고 발표 흐름도 대략 잡혀 있었다. 발표 규모도 지금까지 해왔던 발표들에 비하면 크지 않은 편이라, 영어로 준비하느라 리허설에서 조금 긴장했던 것 말고는 본 발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발표 스크립트를 전부 숙지한다거나 예상 Q&A를 준비해간다거나 하는 한국에서 할 때만큼 100%를 보여줬느냐 물어보면 그렇지 않았다는데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투자 목적의 / 팀의 명운이 달린 문제로 생각하기보다는 후반으로 갈수록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는데 집중했던 것 같다(팀 내 다른 일에 좀 더 무게를...).
다행히 랩실 인턴을 하면서 영어로 논문 리뷰 발표를 3번 정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전반적인 흐름이나 질의응답도 나름 매끄럽게 이어갔다!

또 기억에 남는 건 심사위원의 반응이었다. 처음 들은 피드백은 "너무 잘했다, 조금만 바꾸면 되겠다"였다. 그런데 그 "조금"에 중요한 US VC만의 관점이 담겨 있었다. 나는 스토리의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문제를 겪었고, 이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이만큼 있고, 실제로 만들어봤더니 반응이 좋았다"는 흐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고, "이 문제는 내 문제고, 나 말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확신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리허설 때 받은 피드백을 반영하기보다, 영상으로 서비스를 화려하게 보여주는 데만 몰두했던 것 같다(발표 측면만 놓고 보면 서비스 데모나 10분 중 6분만에 concise하게 전달한 점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아이템 자체도 한국에서는 버티컬하게 "작지만 매력적인 시장"이라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성공했을 때 그 상단이 매우 높은 호라이즌한 방향성을 바랐고 또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피드백을 들은듯하다.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내용을 점검 하는 게 먼저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확인했다.

발표를 준비하며, 벨뷰 도서관에서


돌아와서 다시 보는 글로벌 진출

귀국을 앞두고 팀에 공유하려고 생각을 정리해봤다. 8주 동안 배운 걸 한 문장으로 줄이면,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게 훨씬 많다는 것이다.

고객 발굴부터 다시 해야 하고, 제품 포지셔닝도 재점검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true crime 장르가 상당히 유명하고 인기 있는데, 이게 한국에서 생각하는 크라임씬이나 추리·두뇌게임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우리나라의 예능 느낌보다는 true...다큐멘터리 서사가 강하다). ASO 관점에서도 글로벌 시장은 확실히 경쟁이 심했다. 국내에서는 '슬루스'라는 키워드를 잘 안 써서인지 항상 최상단에 뜨는데, 영어권에서는 풀네임을 입력해도 나오지 않았다. 원래는 나왔었는데 어느 순간 밀려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번역만 하면 어차피 영어는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기도 하니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지 시장 상황을 알아야 한다. 언어의 장벽은 허물어졌지만 문화의 장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전 세계에서 통한다"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ICP는 가장 니치한 고객부터 시작해서 넓혀가야 한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시장 상황이 다르다 보니, 원래 어떤 나라를 겨냥해 만든 제품이 오히려 또다른 나라에서 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운이 좋은 케이스. 하지만 대부분은 한 시장에 집중해도 부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애초에 글로벌 진출이 목적이라면, 처음부터 미국을 겨냥하거나 영어로 최적화하는 팀도 많은 것 같았다. 한 번 시장을 정하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진출이 필요한 이유도 명확해졌다. 앱스토어 수수료 30%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전 세계 유저에게서 얻은 수익을 각 나라별로 따로 신고할 필요 없이 스토어가 알아서 처리해준다(미국 법인 설립에 대한 세션에서 세금이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다). 각국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아도, 플랫폼 하나로 전 세계 유저에게 앱을 노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규모 자체가 달랐다. 스토어 첫 페이지에 노출되는 추리 앱들은 최소 1만, 많게는 50만·100만 다운로드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 앱들의 퀄리티가 특별히 좋으냐고 묻는다면,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인 경우도 많다. 지도 데이터를 차치하더라도 구글맵보다 네이버맵이 대중교통이나 편의 기능 면에서 더 낫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타깃 시장의 차이다.



시애틀 생활을 마무리하며

이제는 돌아갈 시간

2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시애틀은 내가 뉴욕이나 LA에서 만났던 미국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신도시 같은 인상, 기술과 자연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 뉴욕과 LA에 갔을 때는 일종의 여행 목적으로 모든 걸 봤기 때문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는데, 시애틀의 도시 분위기는 처음으로 그런 마음이 들게 했다. 특히 벨뷰가 그랬다.

1편에서 나는 24년의 미국행을 돌아보며 이런 아쉬움을 남긴 적이 있다. 스피어 말고는 기술과 혁신을 제대로 느낀 순간이 없었다고. 이번 8주는 그 아쉬움을 채워준 시간이었다. Tech Week를 비롯한 네트워킹 세션들, 창발 피크닉과 커피챗, 그리고 Demo Day에서 받은 날카로운 피드백까지. 결국 내가 보고 싶었던 건 화려한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돕고 배우며 스스로 굴러가는 생태계였다. 그리고 이번엔 그걸 직접 겪을 수 있어서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시애틀에서의 기억을 갖고, 다음 스텝을 준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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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AI 기술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과기원생 Hyeon이라고 합니다. 저는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는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인공지능이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만, 인공지능은 데이터로 부터 연관관계를 학습하기 때문에 지식들을 새로 통합해서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인공지능이 뉴턴 전에 만들어졌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인슈타인 전에 만들어졌다면 중력이 어떻게 생기는지 설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본질'을 탐구하고 그 본질로부터 다른 곳에 적용하며 인공지능을 현명하게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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