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글로벌프로그램] 다시 미국에 오다 - (2편)

 이번 글부터는 본격적인 미국 생활과 배우고, 느낀 점에 대해 정리해봅니다. 이에 앞서 미국 생활의 계기와 과정은 이전 글에 정리해두었습니다.


다시 기본으로

약 9시간 50분 간의 비행

인천에서 시애틀까지는 10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국 안에서도 서울과 가장 가깝다는 도시라던데, 정말 그랬다.

도착해서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어? 도시가 상당히 깨끗한데?"

새로 지어진 건물이 유독 많이 보였고, 도시 미관이 전체적으로 정돈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원도 곳곳에 잘 조성되어 있었고, 자전거 도로는 웬만한 지역엔 다 깔려 있었다. 심지어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빠른 구간도 있었다. LA에서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 차로 갈 때보다 20분에서 길게는 1시간 넘게 차이 나는 경우가 흔해서 매번 Uber나 Lyft를 잡아야 했는데, 여기는 대중교통이 나름 잘 갖춰져 있었다(진짜 Uber를 이용한 적이 손에 꼽는다). 특히 지하철에 놀랐다. 뉴욕이나 LA의 지하철을 떠올렸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탈 뻔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일상적으로 붐비는 시애틀 지하철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역마다, 또 도시마다 특성이 다 다르구나"

지하철 역의 풍경
(지금까지 본 미국 지하철 역 중에서 가장 깔끔했다)

숙소인 Mercer Court도 비슷했다. 명목 상 학생 신분으로 온 게 아니라 단기 프로그램으로 온 거긴 하지만, UW의 기숙사에서 묵게 되었다. 그래서 프론트에서 체크인하는 절차 자체는 UCLA 때와 다를 게 없었는데, 주변 환경이 확연히 달랐다. LA가 고속도로가 쭉 뻗은, 넓게 퍼진 도시라는 인상이었다면 여긴 바다와 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이었다. 기숙사 안에 텃밭이 있다는 게 특히 신기했다.

우리학교 못지 않게 쾌적한 기숙사



생태계를 보다

오리엔테이션은 WTIA와 UW CoMotion에서 진행됐다.

1일차 OT

UW CoMotion은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 학교의 창업지원팀 같은 곳이었다. 연구실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시장으로 끌어내는 역할. 자체 인큐베이팅 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입주 기업을 돕고 직접 인큐베이팅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수업을 듣던 공간 자체가 IT 스타트업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Startup Hall이었다. 바로 옆이 사무실 있는 공간이었는데 건물 자체가 넓고 층고도 높아서 일하기 좋아보였다. 창업팀 별로 사무실이 구분된 느낌이 아니라 공유오피스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프로그램을 도맡고 있는 WTIA와의 관계였다. WTIA는 워싱턴주의 테크 산업 무역·비영리 협회로, 주 전역의 테크 기업과 창업가, 빅테크 현직자들이 회원으로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이 전문적으로 액셀러레이팅을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얼마나 빈번히, 그리고 밀접히 협력하는지는 직접 경험해봐야 알겠지만, 첫인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애틀 지역 안의 산학연 연계가 생각보다 탄탄하고, 그 관계가 꽤 끈끈하게 창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걸 점점 느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촘촘하면 지역 안에 갇혀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의 네트워크로 세계 시장까지 확장할 수 있는 구조도 함께 갖춰져 있었다. 이런 게 선순환 구조인가, 싶었다.



Remind

6월 24일, Ideation Sprint가 있었다.

이미 아이디어를 확정하고 창업 본궤도에 오르기 직전인 나에게 초반 1~2주 세션이 새로운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다만 리마인드는 됐다.

5 Why Framework

5 Why 프레임워크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는 훈련이 특히 그랬다. 아직 이걸 어떤 구체적 문제에 실전으로 적용해보진 않았지만,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게 공학적으로도, 창업이나 문제 해결 전반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 이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요즘 AI를 잘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명확하게 질문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생각해보면 명확히 요청한다는 건 곧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뿌리부터 잘못돼 있으면 이파리를 아무리 다듬어도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그러니 근본 원인을 먼저 찾고, 거기서부터 적용해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팀 내에서 이미지 관련 기능을 개발하는데, 이미지 생성 경로가 총 3가지라 Opus 4.6에게 개발을 시켜도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하니 알아서 해결해달라고 했을 때 새로운 반례가 계속해서 등장했던 경험이 있다. 결국 중요했던 건 3개의 생성 경로 중에서 source of truth를 찾아서 통합하는 일이었다.

ICP를 직접 설정해본 것도 새로운 자극이었다. ICP는 원래 B2B에서 쓰이는 말인데, 고객 페르소나 개념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는 우리 타깃을 그냥 "추리덕후"라고 막연히 설정해두고 있었다. 이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주로 어떤 시간에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지까지 파고들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래야 마케팅을 어디에,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전략이 선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마케팅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점에서 앞으로 깊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 중 하나다.

ICP condition



첫 멘토링

6월 26일에는 Pitch Deck Basics와 Founder-Market Fit 세션이 이어졌고, 그날 점심 이후 첫 멘토링이 있었다.

멘토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Product Manager로 일하다 지금은 본인 사업을 하고 계신 분으로 배정됐다. 첫 멘토링에서는 슬루스가 어떤 서비스인지 직접 앱을 보여드리며 설명하고, 이 프로그램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고민, 그리고 pitch deck 설계)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멘토링 세션


솔직히 시작 전에는 걱정과 설렘이 반반이었다. 1시간 넘게, 그것도 1:1로 영어 프리토킹을 해야 한다는게 (아마) 처음이라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슬루스를 이렇게 자세히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처음이었다. 다행히 첫 멘토링에서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서비스 소개와 목표)을 명확히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터미널만 보며

6월 29일부터 나흘간은 Building with LLMs Course였다.

요즘 나는 Claude Code로 작업하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계속 터미널만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정작 코드 레벨에서 이게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순간이 종종 있었다. 이번 코스를 들으면서, 어느새 이게 표준이 되어 있다는 걸 체감했다. 교수님도, industry에서도, 어느새 바이브코딩이란 단어가 standard인듯한 느낌을 받았다. 코드 레벨에서 하나하나 파악하는 것보다 아키텍처 레벨의 추상화, 전체 구조를 그리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흐름이 맞았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Agent의 현주소를 알 수 있었던 시간



무기를 벼리는 시간

7월 둘째 주는 GTM의 뼈대를 다지는 실습으로 채워졌다. Customer Segmentation, Business Model Canvas, Competitor Mapping과 2x2 매트릭스, AI를 활용한 페르소나 만들기, Customer Development까지. 하나하나 뜯어보면 새로울 것 없는 프레임워크들이지만, 우리 제품에 직접 대입해보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 도구들이 진짜 쓸모를 드러낸 건 다음 주였다.

(AI로 간단히 시각화해본 흐름)


오가닉이 먼저다

7월 15일, Advertisement Workshop.

이 세션은 타이밍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6월 초에 이미 앱스토어에 배포를 마친 상태였고, 그때부터 계속 "이제 이걸 어떻게 알릴 것인가"를 고심하던 참이었다.

핵심은 이거였다. 무작정 광고에 돈을 지불할 게 아니라, 초기에는 타깃 고객을 명확히 해서 오가닉 유입을 극대화하는 게 먼저다. 앞서 다진 ICP가 바로 여기서 쓰였다. 막연히 "추리덕후"에게 광고를 돌리는 것과, 그들이 어느 시간에 어떤 커뮤니티에 머무는지 알고 접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지금은 이 피드백을 바탕으로 마케팅 채널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진짜 피드백을 받다

같은 주 금요일, 세 번째 멘토링에서는 멘토님이 직접 슬루스를 사용해보며 피드백을 주셨다.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리뷰 시스템 얘기였다. 앱을 출시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게 사용자 피드백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CBT나 MVP 테스트 단계에서는 설문을 받거나 직접 인터뷰를 하면서 개선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 정작 앱을 출시하고 나니 유저와 소통할 통로가 없었다. 왜 이탈했는지, 왜 결제했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소비자로서 여러 앱을 쓸 때는 뜨는 리뷰 요청을 그냥 넘기기만 했는데, 운영자 입장이 되니 리뷰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인지 새삼 다시 보게 됐다.

미국 등 다른 문화권에 진출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으로는 콘텐츠의 로컬라이제이션을 짚어주셨다. 다행인 건 최근 K-콘텐츠가 유명해지면서 한국식 이름이나 용어에 사람들이 꽤 친숙해졌다는 점이었다. 다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니, 실제로 진출한다면 로컬라이제이션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피드백도 함께 받았다. 생각해야 할 부분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멘토링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고민 시각화



그리고

UW의 자랑, 해리포터 도서관이라고 불리우는 Suzzallo Library.

Fourth of July, 미국 독립 기념 불꽃놀이.

Ferry를 타며 시애틀 다운타운을 돌아봤던 순간.

배달과 대형마트의 시대, 아직도 사람이 많던 전통 시장 Pike Place Market.

마지막으로 한때 전세계 시가총액 1위으로 빅테크의 시초 격인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까지.

시애틀의 로컬의 느낌과 기술 생태계를 접하고 적응해가던 지난 한 달이었다.



그렇게 다섯 주가 지나고, 이제 Seattle Tech Week를 앞두었다.



hyeon_B

안녕하세요! AI 기술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과기원생 Hyeon이라고 합니다. 저는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는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인공지능이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만, 인공지능은 데이터로 부터 연관관계를 학습하기 때문에 지식들을 새로 통합해서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인공지능이 뉴턴 전에 만들어졌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인슈타인 전에 만들어졌다면 중력이 어떻게 생기는지 설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본질'을 탐구하고 그 본질로부터 다른 곳에 적용하며 인공지능을 현명하게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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