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지난 시간까지는 데이터 링크 계층의 일반적인 원리에 대해 학습했다. 이제 시야를 조금 더 좁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네트워크인 LAN(Local Area Network), 즉 근거리 통신망에 대해 깊이 파고들 차례다. 사무실, 집, 캠퍼스 등 제한된 공간에서 컴퓨터들을 연결하는 기술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수많은 기술과의 경쟁 속에서 어떻게 이더넷(Ethernet)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그리고 더 빠른 속도를 향한 요구에 이더넷은 어떻게 스스로를 변화시켜 왔을까? 이번 기록에서는 LAN의 기본적인 구조부터 시작하여, 현대 네트워크의 근간이 된 이더넷의 표준과 그 진화 과정을 단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LAN이란 무엇인가: 이더넷의 지배
LAN(Local Area Network)은 이름 그대로 건물이나 캠퍼스와 같이 지리적으로 제한된 영역 내의 컴퓨터들을 연결하기 위해 설계된 네트워크다. 1980년대와 90년대, 여러 장치가 하나의 통신 매체(케이블)를 공유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 접근 제어(Media Access Control) 방식이 등장했다. 하지만 치열한 기술 경쟁의 역사 속에서 토큰 링(Token Ring) 등 대부분의 프로토콜은 사라지고, 이더넷(Ethernet)이 LAN 시장을 거의 독점하게 되었다.
이더넷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했기 때문이다. 10Mbps에서 시작하여 100Mbps(Fast Ethernet), 1Gbps(Gigabit Ethernet), 그리고 10Gbps를 넘어 현재는 훨씬 더 빠른 속도를 지원하며, 과거의 기술과 호환성을 유지하면서도 성공적으로 발전해왔다.
IEEE 802 프로젝트: LAN 표준의 틀을 만들다
다양한 제조사에서 만든 네트워크 장비들이 서로 문제없이 통신하려면 공통된 약속, 즉 표준이 필요하다. IEEE 프로젝트 802는 바로 이 LAN 기술들의 표준을 정립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TCP/IP 모델의 하위 두 계층, 즉 물리 계층과 데이터 링크 계층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특히 데이터 링크 계층을 두 개의 부계층으로 나누어 접근한 것이 핵심이다.
LLC (Logical Link Control): 데이터 링크 계층의 핵심 기능인 흐름 제어, 오류 제어 등을 담당한다. 모든 IEEE 802 LAN 표준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단일 프로토콜을 제공함으로써, 하부의 MAC 기술(이더넷, 토큰 링 등)이 다르더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MAC (Media Access Control): 물리적인 매체에 어떻게 접근할지를 정의한다. 이더넷의 경우, 바로 이 MAC 부계층에서 그 유명한 CSMA/CD 방식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프레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프레이밍 기능의 일부도 이곳에서 처리된다.
표준 이더넷 (Standard Ethernet, 10Mbps)
가장 기본적인 10Mbps 속도의 이더넷을 '표준 이더넷'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느리지만, 현대 이더넷 기술의 모든 기본 특성이 여기에 담겨 있다.
특징: 비연결성, 비신뢰성 서비스
표준 이더넷은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진다.
비연결성 (Connectionless): 데이터를 보내기 전에 상대방과 연결을 설정하는 과정이 없다. 보낼 프레임이 있으면 그냥 매체로 전송한다.
비신뢰성 (Unreliable): 프레임이 목적지에 잘 도착했는지,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재전송해주는 기능이 없다. 수신 측에서 CRC 검사를 통해 프레임 손상을 발견하면, 그저 조용히 해당 프레임을 버릴 뿐(drops the frame silently), 송신자에게 오류 발생을 알려주지 않는다. 신뢰성 확보는 상위 계층(주로 TCP)의 몫이다.
이더넷 프레임 구조와 크기 제한
이더넷은 데이터를 프레임(Frame)이라는 단위로 묶어 전송한다. 이 프레임에는 최소 및 최대 크기 제한이 존재하는데, 이는 이더넷의 동작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최소 프레임 길이 (64바이트): 이더넷의 매체 접근 방식인 CSMA/CD가 안정적으로 동작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네트워크의 한쪽 끝에서 보낸 프레임의 첫 비트가 가장 먼 반대쪽 끝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발생한 충돌 신호가 다시 원래 송신자에게 돌아오는 시간 동안 송신이 계속되고 있어야 충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최소 길이가 바로 64바이트(512비트)이다.
최대 프레임 길이 (1518바이트): 이 제한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첫째, 특정 스테이션이 공유 매체를 너무 오랫동안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둘째, 이더넷이 설계될 당시 메모리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수신 측의 버퍼 부담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주소 체계: 48비트 MAC 주소
이더넷은 각 장치를 식별하기 위해 6바이트(48비트) 길이의 고유한 MAC 주소를 사용하며, 보통 콜론으로 구분된 12개의 16진수로 표기한다 (예: 47:20:1B:2E:08:EE
).
주소 전송 방식: 주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이트 단위로 전송된다. 하지만 각 바이트 내부에서는 최하위 비트(LSB)가 먼저 전송된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덕분에 수신자는 주소의 첫 바이트만 받아도 이 주소가 한 장치를 가리키는 유니캐스트(Unicast)인지, 특정 그룹을 가리키는 멀티캐스트(Multicast)인지를 가장 먼저 판단할 수 있다.
주소 유형 구분: 목적지 주소 첫 바이트의 LSB가 0이면 유니캐스트, 1이면 멀티캐스트다. 16진수 표기법에서는 두 번째 숫자가 짝수(
4A:...
)면 유니캐스트, 홀수(47:...
)면 멀티캐스트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모든 48비트가 1인 주소(FF:FF:FF:FF:FF:FF
)는 네트워크 내의 모든 장치에게 보내는 브로드캐스트(Broadcast) 주소로 예약되어 있다.
접근 방식의 진화: 허브에서 스위치로
초기의 표준 이더넷은 모든 장치가 하나의 케이블(매체)을 공유하는 버스(Bus) 구조였고, 충돌을 제어하기 위해 CSMA/CD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 구조에서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장치가 많아질수록 충돌이 잦아져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이더넷이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든 것이 바로 스위치(Switch)의 등장이었다.
브리지드/스위치드 이더넷 (Bridged/Switched Ethernet): 허브(Hub)가 들어온 신호를 모든 포트로 그대로 복사해 전달하는 반면, 브리지나 스위치는 프레임의 목적지 MAC 주소를 보고 해당 목적지가 연결된 포트로만 프레임을 전달한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트래픽을 줄이고, 각 포트를 독립적인 충돌 도메인(Collision Domain)으로 분리하여 충돌 발생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Comparing Bridge with Hub 전이중 스위치드 이더넷 (Full-duplex Switched Ethernet): 스위치를 사용하면 각 장치가 스위치와 1:1로 점대점(point-to-point) 연결을 맺게 된다. 이 경우, 다른 장치와 매체를 공유할 필요가 없으므로 충돌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CSMA/CD 기능을 끄고, 송신과 수신을 동시에 수행하는 전이중(Full-duplex) 방식으로 동작하여 이론상 대역폭을 두 배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현대 이더넷 LAN의 표준적인 동작 방식이다.
Full-duplex Switched Ethernet
더 빠른 속도를 향한 여정: 고속 이더넷의 진화
표준 이더넷이 스위치의 등장으로 충돌 문제를 해결하며 안정성을 확보했지만, 기술의 발전은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더넷은 이러한 요구에 발맞춰 10Mbps의 벽을 깨고 고속의 시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패스트 이더넷 (Fast Ethernet, 100Mbps)
이더넷의 첫 번째 거대한 도약은 데이터 전송 속도를 10배 끌어올린 패스트 이더넷(Fast Ethernet)의 등장이었다. 패스트 이더넷의 핵심 성공 요인은 '혁신'과 '유지'의 절묘한 균형에 있었다.
패스트 이더넷의 목표:
속도 향상: 데이터 전송률을 100Mbps로 업그레이드한다.
호환성 유지: 기존 표준 이더넷과의 호환성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동일한 48비트 MAC 주소 체계와 프레임 형식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러한 호환성 전략 덕분에 사용자들은 기존 네트워크 구조를 완전히 바꾸지 않고도 점진적으로 속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속도가 10배 빨라지면서 기존의 CSMA/CD 방식에는 문제가 생겼다. 동일한 시간 동안 더 많은 비트를 전송하게 되므로, 충돌을 제대로 감지하기 위한 최소 프레임 길이와 네트워크 최대 길이 간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패스트 이더넷은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접근 방식의 변화:
스타 토폴로지 채택: 충돌에 취약한 버스 토폴로지를 완전히 버리고, 모든 장치가 중앙 허브나 스위치에 연결되는 스타 토폴로지(Star Topology)를 표준으로 채택했다. 이로 인해 CSMA/CD를 유지하더라도 네트워크의 최대 직경이 2500m에서 250m로 크게 줄어들었다.
CSMA/CD의 불필요성: 궁극적으로 패스트 이더넷은 각 호스트가 스위치와 전이중(Full-duplex) 방식으로 1:1 연결되는 환경을 지향하게 되었다. 각 연결이 독립적인 사설 매체처럼 동작하므로 충돌의 개념 자체가 사라졌고, 더 이상 CSMA/CD는 필요 없게 되었다.
(Fast Ethernet까지는 사용됨, Gigabit로 추가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
기가비트 이더넷 (Gigabit Ethernet, 1Gbps)
패스트 이더넷의 성공 이후, 네트워크 속도에 대한 요구는 1Gbps 시대로 접어들었고, 이에 부응하여 기가비트 이더넷(Gigabit Ethernet)이 표준화되었다. 기가비트 이더넷 역시 성공의 핵심 열쇠는 하위 호환성이었다. 주소 길이, 프레임 형식, 최대 및 최소 프레임 길이 등 이더넷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속도만 1Gbps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더넷이 어떻게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10-기가비트 이더넷 등으로 진화는 계속되며, 이더넷은 LAN의 대명사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선 없는 자유로움: 무선 LAN (Wireless LAN)의 시대
이더넷이 유선 통신의 속도를 끊임없이 끌어올리는 동안, 네트워크 기술의 또 다른 축에서는 '선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무선 LAN(Wireless LAN)의 등장이다.
유선 LAN vs. 무선 LAN: 근본적인 차이
무선 LAN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선 LAN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특징 | 유선 LAN (Wired LAN) | 무선 LAN (Wireless LAN) |
매체(Medium) | 안정적인 구리선, 광섬유 | 예측 불가능한 공기(Air) |
호스트 연결 | NIC에 부여된 고정된 MAC 주소로 특정 지점에 물리적으로 연결 | 물리적 연결 없이 자유롭게 이동 가능 |
신호 전달 | 지정된 경로로만 전달 | 기본적으로 브로드캐스트(Broadcast)되어 주변 모두에게 퍼져나감 |
이러한 차이, 특히 '공기'라는 매체의 특성은 무선 LAN이 유선 LAN과는 전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함을 의미했다.
무선 환경의 고유한 난제들
'공기'를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은 케이블을 통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다. 무선 통신은 다음과 같은 고유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감쇠(Attenuation): 전파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므로 거리가 멀어질수록 신호의 세기가 급격히 약해진다.
간섭(Interference): 같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다른 기기(다른 Wi-Fi, 블루투스, 전자레인지 등)의 신호가 내 신호에 섞여 데이터를 손상시킬 수 있다.
다중 경로 전파(Multipath Propagation): 전파가 벽이나 사물에 반사되면서, 수신 측에서는 시간 차를 두고 여러 개의 동일한 신호가 도착하여 신호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높은 오류율: 위와 같은 요인들로 인해 무선 환경은 유선에 비해 본질적으로 잡음이 많고 오류 발생률이 훨씬 높다.
IEEE 802.11 (Wi-Fi) 아키텍처
이러한 무선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표준화된 무선 LAN을 구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IEEE 802.11 표준이다. 우리는 이를 Wi-Fi(Wireless Fidelity)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부른다. IEEE 802.11은 다음과 같은 기본 구조를 정의한다.
BSS (Basic Service Set): 무선 LAN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단위다.
애드혹 BSS (Ad hoc BSS): 중앙 제어 장치 없이 단말기끼리 직접 통신하는 방식이다.
인프라 BSS (Infrastructure BSS):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식으로, 모든 통신이 AP(Access Point)라는 중앙 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AP는 무선 단말기들을 유선 네트워크에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ESS (Extended Service Set): 두 개 이상의 BSS가 분배 시스템(Distribution System, 보통 유선 LAN)을 통해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처럼 동작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넓은 영역을 이동하면서도 끊김 없이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다.
스테이션 이동성(Mobility): IEEE 802.11은 사용자의 이동성을 보장하지만, BSS를 넘어가거나 다른 ESS로 이동할 때 통신의 연속성을 완벽하게 보장하지는 않는다. 로밍(Roaming)과 같은 기술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Wi-Fi의 MAC 부계층: 공중의 교통정리
유선 이더넷의 CSMA/CD가 훌륭한 해결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선 환경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충돌 감지 불가: 무선 장비는 전력 문제 등으로 인해 데이터를 송신하면서 동시에 수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즉, 자신이 보낸 신호가 다른 신호와 충돌했는지 스스로 감지할 방법이 없다.
히든 스테이션 문제 (Hidden Station Problem): AP(Access Point)의 양쪽에 있는 단말기 A와 C가 서로는 너무 멀어 상대방의 신호를 감지할 수 없지만, AP와는 통신이 가능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A와 C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각자 채널이 비어있다고 판단하고 동시에 AP로 데이터를 전송하여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AP에서는 신호가 깨지지만, A와 C는 충돌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신호 감쇠: 거리에 따라 신호가 크게 약해지기 때문에, 설령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그 신호가 나에게까지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무선 LAN은 '충돌 감지'가 아닌 '충돌 회피(Collision Avoidance)'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해야만 했다.
CSMA/CA: 충돌을 피하기 위한 노력
CSMA/CA(Carrier Sense Multiple Access/Collision Avoidance)는 이름 그대로 충돌을 사전에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토콜이다. 기본적인 원리는 "보내기 전에 듣는다"는 CSMA와 같지만, 충돌을 피하기 위한 몇 가지 정교한 장치가 추가되었다.
DCF (Distributed Coordination Function): CSMA/CA를 사용하는 기본적인 매체 접근 방식이다. 모든 단말기가 분산된 방식으로 채널 접근을 위해 경쟁한다.
핸드셰이크를 통한 충돌 회피 (RTS/CTS): '히든 스테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RTS(Request to Send)와 CTS(Clear to Send)라는 제어 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보내려는 단말기 B는 먼저 AP에게 "나 지금 데이터 보낼 건데, 괜찮아?"라고 묻는 짧은 RTS 프레임을 보낸다.
AP는 채널이 비어있으면 "응, 보내도 좋아!"라는 의미의 CTS 프레임으로 응답한다. 이 CTS는 AP의 통신 범위 내에 있는 모든 단말기(C 포함)에게 전달된다.
CTS를 수신한 C는 '누군가(A)가 AP와 통신할 예정이구나'를 인지하고, B의 통신이 끝날 때까지 데이터 전송을 시도하지 않고 기다린다.
NAV (Network Allocation Vector): RTS나 CTS 프레임에는 앞으로 채널을 얼마 동안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지속 시간' 정보가 포함된다. 이 프레임을 들은 다른 단말기들은 NAV라는 타이머를 설정하고, 이 타이머가 0이 될 때까지 채널이 사용 중인 것으로 간주하여 매체 접근을 시도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가상 채널 감지' 메커니즘으로, 불필요한 채널 확인을 줄여준다.
복잡한 프레임 구조와 제어
무선 환경의 복잡성을 관리하기 위해 IEEE 802.11의 프레임은 유선 이더넷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프레임의 유형을 정의하는 관리 프레임(Management frames), 채널 접근과 응답에 사용되는 제어 프레임(Control frames)(RTS, CTS, ACK 등), 그리고 실제 데이터를 담는 데이터 프레임으로 나뉜다. 또한, 오류율이 높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큰 데이터를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보내는 프래그먼테이션(Fragmentation) 기능도 지원한다.
Frame Format |
블루투스: 개인 영역 네트워크(PAN)의 표준
Wi-Fi가 비교적 넓은 영역의 '근거리 통신망'을 위한 기술이라면, 우리 주변의 기기들을 일대일 또는 소규모로 연결하는 데에는 블루투스(Bluetooth)라는 또 다른 무선 기술이 널리 사용된다.
블루투스는 IEEE 802.15 표준에 기반한 무선 개인 영역 네트워크(WPAN, Wireless Personal-Area Network) 기술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일한 왕 Harald Blaatand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기술은, 복잡한 설정 없이 기기들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애드혹(Ad hoc) 방식에 특화되어 있다.
아키텍처: 피코넷과 스캐터넷
피코넷(Piconet): 블루투스 네트워크의 기본 단위다. 최대 8개의 장치가 연결될 수 있으며, 그중 하나가 프라이머리(Primary)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세컨더리(Secondaries)가 된다. 모든 통신은 프라이머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스캐터넷(Scatternet): 여러 개의 피코넷이 서로 연결되어 더 큰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을 스캐터넷이라 한다. 한 장치가 어떤 피코넷에서는 세컨더리이면서, 동시에 다른 피코넷의 프라이머리가 될 수도 있다.
블루투스의 계층 구조
라디오 계층 (Radio Layer): 물리 계층에 해당한다. Wi-Fi와 동일한 2.4GHz ISM 대역을 사용하지만, 간섭을 피하기 위해 매우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바로 FHSS(Frequency-Hopping Spread Spectrum) 기법이다. 블루투스는 79개의 채널을 초당 1600번씩 매우 빠르게 옮겨 다니며(hopping) 통신한다. 한 주파수에 머무는 시간(dwell time)은 625µs에 불과하여 특정 주파수의 간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베이스밴드 계층 (Baseband Layer): MAC 부계층에 해당하며, 피코넷 내의 통신을 제어한다. 블루투스의 접근 방식은 TDD-TDMA(Time-Division Duplex - Time-Division Multiple Access)이다. 프라이머리가 625µs 길이의 타임 슬롯(Time Slot)을 세컨더리들에게 할당하여 통신 순서를 정해주는 중앙집중식 제어 방식이다. 정해진 시간에만 통신하므로 Wi-Fi와 같은 충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LAN 탐구를 마치며
건물의 모든 컴퓨터를 하나의 케이블로 연결하려 했던 초기의 이더넷에서부터 시작하여, 스위치의 등장으로 충돌 문제를 해결하고 기가비트 속도로 발전한 유선 LAN의 역사, 그리고 '공기'라는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CSMA/CA와 같은 정교한 규칙을 만들어낸 Wi-Fi, 마지막으로 FHSS와 TDMA를 통해 개인 영역에서 안정적인 연결을 제공하는 블루투스까지. 이번 학습을 통해 LAN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기술적 고민과 해결책이 담겨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각 기술은 주어진 환경과 목적에 최적화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결'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진화해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로써 데이터 링크 계층과 LAN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음 장에서는 이 로컬 네트워크들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데이터를 보내는 네트워크 계층의 원리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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